직장인 연봉체계, 호봉제와 연봉제 : 호봉제의 함정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단연코 연봉협상이 아닐까 싶다. 지난 1년간 나의 노력과 시간, 성과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과정이 연봉협상이고, 직장인으로서 또 근로자로서 급여는 고단한 이른 아침에 출근을 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그 중요한 연봉협상을 하며, 나는 매번 호봉제를 갈망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겸손을 유교적인 미덕이라 배우고 자란 세대인지라 더욱이 자기 어필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일만 많이하고 실속이 없는 스타일'이라고 여기면서도 지금껏 강하게 연봉협상에 임하지를 못하였던 것 같다. 그런 시간을 겪으며 호봉제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다.
연봉제와 호봉제의 차이
연봉제는 근로자의 월급 및 연봉이 그들의 성과나 기여도에 따라 결정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 성과급이 월급 외 주어지게 된다. 따라서 연봉제는 성과 중심의 임금 제도인지라 이론적으로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연봉에 반영하게 되기 때문에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를 일으켜 성과를 증대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호봉제는 성과보다는 근속 기간에 따른 보상을 받는 임금 책정 방식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직장에 머문 시간에 정비례하여 임금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개인의 능력이나 업무의 강도, 업무적 성과 등은 연봉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직장에서 연봉제 체제 하에 있을 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월급이 오르는 호봉제가 근로자에게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호봉제가 좋지만은 않더라 : 호봉제의 이면
나는 최근에 연봉제에서 호봉제 체계인 곳으로 이직을 하였다. 물론 이직을 결정할 때 이러한 임금 제도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임에 분명했다. 매년 연봉협상에 날이 서 있지 않아도 되고, 인사 평가를 높게 받기 위해 업무 외적인 회식에 빠지지도 못했던 지난 날들이여 안녕을 외치며 연봉을 낮춰가면서까지 이직을 결정했었다. 하지만 어떤 분야도 장점만 가지고 있을 수 없음은 자명한 것 같다.
일은 누가 하나?
연봉제의 직장생활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이직 후 나는 주어진 업무 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기 위해 추가적인 업무도 다른 동료들을 도와주는 업무도 참으로 열심히 했었던 것 같다.
1년이 지나고 깨달았다. 나만 여전히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나를 제외한 주변의 상사는 물론이고 후배로 들어온 사원들까지도 수습기간일 때 조차 자신의 일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계장님, 연가시라고요?
오늘 회의는 계장님 담당이신데, 제가 들어가나요?
심지어,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땐, 당일 연가를 써서 일을 떠넘기는 상황까지 발생할 만큼, 일 떠넘기기가 심각함을 깨달으며, 호봉제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
나도 일을 안하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나 또한 일 넘기는 무리에 편승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이직한 직장의 환경에 적응을 하느라 일을 더 적극적으로 잘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어쩌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고 싶은, 다른 이들에게 잘보이고 싶은 내면의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마음은 내가 만만한가로 변해갔고, 일은 더 많은 일을 가져오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이라 이러한 환경이 일종의 '태움'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행동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날의 나였으면 '그냥 내가 하지뭐' 했을 일들이 오늘의 나는 무슨일인지 자세하게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이걸 왜 내가 해?'라는 반감부터 들어내기 시작했다. 나조차도 나 스스로가 무서울 만큼 조직의 문화에 편승해 가고 있었다. 이렇게 해야 내가 손해보는 일이 줄어든다는 자기 방어적인 생각이 온통 나를 뒤감고 있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호봉제의 그늘 아래에서는 일을 많이 할 이유 자체가 없었다.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성과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성과가 높다고 해서 이에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일을 적해 한다고 해서 월급이 삭감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일을 많이 하는, 열심히 하는 사람은 그저 바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된 생각과 행동이 진정으로 과연 나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야기하는 것일까?
직장은 개인의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일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책임이다.
일을 하는 주체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지라, 하는 일들이 많아질 수록 당연,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의 수도 늘어나게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자보다 후자에만 기억이 멈추는 것 같다. 일이 많이 하닌까가 아니라 무슨 잘못을 했는가?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일을 맡아서 하려고 하는 마음가짐과 동기가 안생기는 것이다. 댓가가 없는 책임을 지고자 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직장은 결코 월급을 받는 공간만이 아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근로 계약이 체결되어 있으니 정해진 시간에 맞춰 정해진 공간에 머물러야만 한다.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출퇴근과 직장내 사람들을 직면하며 발생하는 기본적인 에너지 소모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시간이 그냥 의미없이 흘러간다면 과연 그럼에도 나에게 이득일 것일까?
직장이 월급받는 곳만이 아니라, 나의 능력을 키우고, 지금의 능력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의 경력으로 쌓이게 될 것이니, 호봉제 안에서는 성과금으로 연결을 시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성장은 분명 있을 것이다.
요즘은 평생 직장의 개념이 자의든 타이든 무너져가고 있음은 자명하다. 호봉제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직장에 머물며 우리가 이 공간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을 진행해 보아야 한다. 직장이 그러하듯 우리 또한 직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직장인으로서 한 직장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 안에서 일을 미루며 현재의 편안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도전해 나가며 결국 직장을 떠나서도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직업인으로 거듭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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